[의약뉴스]"세밀한 현장 묘사와 고증, ‘K-medical drama’ 열풍 일으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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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이현미 총무이사...BCM 2022에서 메디컬 드라마 흥행 요인 분석
▲ 대한의사협회 이현미 총무이사.
[의약뉴스] ‘하얀거탑’, ‘투하트’,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 드라마 소재가 다양해짐에 따라, 의사와 같은 전문직을 다루는 드라마의 숫자가 예전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이에 의료현장에 대한 조금 더 정확한 묘사와 고증, 그리고 한국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여러 클리셰들에 주의하면 한류와 결합, ‘K-medical drama’라는 또 하나의 열풍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란 의견이 나왔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부산광역시가 후원하는 제16회 부산콘텐츠마켓(BCM) 2022(조직위원장 박형준 부산광역시장) 행사 둘째 날인 지난 9일, 메디컬 드라마 어워드 제정을 위한 학술 콘퍼런스가 개최됐다.
메디컬 드라마를 주제로 열린 국내 최초의 학술 행사에서 대한의사협회 이현미 총무이사는 ‘메디컬 드라마의 현황과 발전방향에 대하여’라는 발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이 이사는 먼저 시청자들이 메디컬 드라마에 기대하는 바에 대해 ▲히어로로서의 의사 ▲의사의 친근한 이미지 ▲낯선 전문 분야에 대한 호기심 충족 ▲언젠가 환자나 보호자가 되어 드라마와 유사한 상황을 맞닥뜨릴 것에 대한 공감 등을 꼽았다.
그는 “아무나 할 수 없지만, 누군가에겐 절실하고 간절히 원하는 것을 해결해 주는 존재를 히어로”라며 “의사에게는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구한다는 직업적 특성으로 인해 초인적 존재에게 부여하는 히어로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된다”고 전했다.
이어 “최근 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받은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선 이 시대 젊은이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우정, 사랑, 직업적 사명감에 대한 내용들을 과장된 표현 없이 진솔하게 전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며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보고 고고학자에 대한 환상을 갖고, 법정드라마를 보면서 법조인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갖는 것처럼 메디컬 드라마를 보며 낯선 전문 분야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언젠가는 환자나 보호자의 입장이 되어 드라마의 내용과 유사한 상황에 맞닥뜨릴 수도 있을 거라는 공감을 갖게 되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메디컬 드라마라는 장르는 타 소재 드라마보다 더 매력적인 부분이 존재한다는 게 이 이사의 설명이다.
다만, 의사 입장에선 드라마의 디테일한 부분의 오류로 인해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지난 2007년 방영된 ‘뉴하트’라는 드라마에선 사고로 인한 혈복강 환자의 배에 볼펜을 꽂아서 응급처치를 했지만, 나중에 간손상을 유발했다고 교수에게 혼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볼펜을 꽂은 위치는 좌측이고 간의 위치는 우측이라는 오류가 있었다.
아카데미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감독상을 휩쓴 영화 ‘밀리언달러베이비’에선 여주인공이 tracheostomy(기관절개술)을 한 상태에서 대화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기관절개술을 하는 경우는 대개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없는, 즉 폐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거나, 호흡을 관장하는 뇌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중증 환자의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태가 일반적이라는 것.
이 이사는 “이러한 장면 이후에 계속 머리를 맴도는 불편감에 제대로 드라마나 영화에 몰입할 수 없었던 경험이 있다”며 “메디컬 드라마에 대한 의학적 자문과 사실적 고증에 대한 부분은 중요하게 다뤄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이 이사는 메디컬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너무도 뻔한 클리셰들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짚었다.
그는 “메디컬 드라마에는 거의 예외 없이 불행하고 어두운 과거나 가족사를 지닌 천재의사가 등장한다”며 “주류사회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을 가졌지만, 수술 실력은 신(神)급인 천재의사, 병원장 2세라든지 거물급 인사의 자녀인 금수저 출신 의사들은 대부분 실력 없고 오만하고 성격마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능력 있는 여의사들은 쌀쌀맞고 차갑다. 착하고 타인의 불행에 쉽게 공감하는 인간적인 의사들은 실력이 떨어지고 항상 허둥지둥하다가 실수해서 윗사람에게 야단을 맞는다”며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성공 포인트 중 하나가 이런 뻔한 클리셰를 따르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특히 “학원물은 학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이고, 의학드라마는 병원에서 의사가 연애하는 이야기이고, 법정드라마는 변호사와 검사가 연애하는 이야기이고, 수사물은 경찰이 범인 쫓다가 연애하는 이야기라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되는 정도”라며 “기승전-연애의 공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대한의사협회 이현미 총무이사는 방송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메디컬 드라마 역시 사회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짚었다.
그는 “메디컬 드라마는 다큐가 아니므로 픽션을 다뤄야 하지만 본질적으로 질병과 진단과 치료에 관한 과정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며 “가볍게 지나가는 대사나 상황 속에서라도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진위를 구별할 수 없는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그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생긴다”고 밝혔다.
이어 “빈번하게 묘사되는 의료기관에서의 폭력상황도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며 “조폭이나 악당이 응급실에서 난동을 부리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에서는 누가 봐도 선악의 구별이 분명하지만, 주인공이나 선한 등장인물이 갑작스런 사고나 좋지 않은 결과 앞에 절망하고 분노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에서 시청자들은 선악의 구별이 모호하게 된다”고 전했다.
주인공과 등장인물의 분노에 공감하게 되고 그러한 폭력이 이해될 수 있는 정당함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게 이 이사의 설명이다.
이 이사는 “응급실을 비롯한 의료기관에서 발생하는 의료진에 대한 폭력은 의료진에게 극심한 공포를 갖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상황을 유발하기도 한다”며 “실제로 환자에 의해 폭력을 당하거나 심지어 살해당하는 의사들도 있다. 의료진들이 가지는 이러란 공포는 직업수행에 심각한 위축을 가져오고 의료현장을 떠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메디컬 드라마의 발전 방향과 관련해선, 장르의 하이브리드에 대한 적극적이고 확장된 시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병원(의사)과 로맨스, 병원과 정치, 병원과 빙의 등의 초자연적 주제, 병원과 범죄(법의학), 병원과 법률, 병원과 판타지, 병원과 SF 등 다양한 장르의 혼합에 대한 새로운 시도들은 메디컬 드라마가 뻔한 소재에 머무르지 않고 발전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영화는 이미 세계 정상의 위치에 올랐고, 한국의 음악과 방송 콘텐츠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며 “실제 의료현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소재를 발굴하고, 더욱 정확한 의료현장의 묘사와 고증을 거친다면 여러 분야에서 세계 최고수준을 나타내는 한국의 의료가, 세계적인 문화를 선도해 나가는 한류와 결합해 ‘K-medical drama’라는 또 하나의 열풍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