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부산 온 ‘파친코’ 제작팀 “소수의 이야기도 메이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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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열린 부산콘텐츠마켓 콘퍼런스 참석
이대호·주영호 배우, 촬영 뒷얘기 들려줘
애플TV플러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 팀이 9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콘텐츠마켓(BCM)의 콘퍼런스에 참석해 촬영 뒷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자영 기자
“한국에서는 이민자의 이야기가 소수(마이너)의 이야기일 수 있지만, ‘파친코’는 전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메이저 스토리가 됐습니다. 우리의 작고 사소한 이야기 중에 전 세계인이 공감하는 이야기가 많을 거예요. 작은 이야기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쫓다 보면 ‘제2의 파친코’ ‘제3의 오징어게임’ ‘제5의 지금 우리 학교는’이 나올 겁니다.”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지난 8일 개막한 ‘부산콘텐츠마켓(BCM)’의 ‘BCM 콘퍼런스’에 애플TV플러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 제작팀이 참석했다. 행사 둘째 날인 지난 9일 오후 ‘글로벌 플랫폼 시대, 글로벌 프로젝트- 파친코, 촬영장 속의 이야기’라는 주제 아래 ‘파친코’의 공동 수석 프로듀서를 맡은 이동훈 (주)엔터미디어픽처스 대표이사가 발제를 했다.
'파친코'의 공동 수석 프로듀서 이동훈 (주)엔터미디어픽처스 대표이사가 지난 9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콘텐츠마켓(BCM)의 콘퍼런스에 참석해 발제를 하고 있다. 이자영 기자
이 대표이사는 “우리 콘텐츠가 북미와 글로벌에서 성공한 작품으로는 올가을 시즌6 방송이 확정된 ‘굿 닥터’와 넷플릭스를 통해 소개된 ‘킹덤’이 있다”며 “북미 시청자들이 자신들에게 익숙한 좀비 장르를 사극이라는 새로운 틀 속에서 보게 한 ‘킹덤’은 ‘한국에서 만드는 드라마가 우리도 즐길 수 있는 작품이구나’를 알게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는 오징어게임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서바이벌이라는 장르 속에 한국적인 게임이 들어가면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좀비 장르와 서바이벌 장르가 결합된 ‘지금 우리 학교는’이 K콘텐츠 열풍을 이어갔다.
애플TV플러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 수 휴 작가 겸 제작 총괄이 시즌2를 집필 중이다. 애플TV+제공
‘킹덤’과 ‘오징어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은 국내 제작사가 제작하고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을 만났다면, ‘파친코’는 엄연히 미국 드라마다. 이 대표이사는 “미국 제작사가 제작하고, 수 휴(허수진)라는 작가가 기획한 미국 드라마가 한국인의 이야기를 다뤘다고 보면 된다”며 “한국말을 하고 한국인이 나온다고 한국 드라마는 아니고, 미드 속에서 한국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고 짚었다.
수 휴 작가 겸 제작 총괄은 현재 ‘파친코 시즌2’를 집필 중이다. 그는 원래 4개의 시즌으로 이 작품을 기획했고, 현재는 시즌2까지의 제작만 확정된 상태다. 이 대표이사는 “극 중 솔로몬(선자의 손자)이 춤을 추다 지하철역까지 뛰어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벡스코(센텀시티역)에서 촬영한 장면이다”며 “다시 와서 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파친코' 속 '솔로몬'이 빗속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던 일본 도쿄 거리 장면은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역에서 촬영됐다. 애플TV+ 화면 캡처
드라마 속 선자 아버지 역을 맡은 이대호 배우는 파친코 제작 현장과 우리 현장의 차이점으로 철저한 사전 준비를 꼽았다. 그는 “구순열 특수 분장에 사전 준비가 많았는데, 빨리 진행되기보다는 단계를 철저하게 밟고 가는 부분이 달랐다”며 “분장 탓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음식을 십을 수가 없어서 살이 많이 빠졌는데, 제작진이 선식을 준비해줘 미숫가루를 먹으면서 촬영했던 기억이 가장 강하게 남는다”며 웃었다.
어부 송 씨 역을 맡은 주영호 배우는 “우리나라에서 작업을 할 때는 언어부터 수직적인 문화가 있다 보니 분야에 따라 리더 역할이 있고, 전체적인 협동이 잘 된다는 장점이 있다”며 “해외 작업은 세분화 돼 있어 전문적인 느낌이 들었고, 분업화가 잘 된 특성 덕분에 정말 신기할 정도로 조용한 현장 분위기에서 촬영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데이빗 킴 공동 수석 프로듀서는 “역할이 세분화 돼 있어서 좋은 점은 책임 소재가 분명하다는 점이다”며 “반면, 한국에서는 내 일이 아니더라도 필요하면 하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 시스템은 ‘내 일이 아니야’ 하고 안 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어 우리나라와 미국 드라마 현장의 차이점으로 의사소통 방법을 꼽았다. 데이빗 킴 공동 수석 프로듀서는 “한국에서는 ‘카톡’으로 일을 많이 하는데, 미국에서는 주로 이메일로 의사소통을 하고 이메일 안에 수백 명이 참조돼 모든 정보가 공유된다”며 “미국에서 온 미술감독이 한국 스태프들에게 이메일 참조로 질문을 보냈는데, 아무도 답을 안 해 이상하다고 하기에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고 카톡을 다운 받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 스태프에게 물어보니 메일을 보고 있는 사람이 200명이 넘는데 답을 하기가 부담스럽다고 했다”며 “커뮤니케이션 방법부터 각종 용어의 차이까지 다른 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애플TV플러스 콘텐츠 '파친코' 스틸 컷. 애플TV플러스 제공
촬영 현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로는 ‘빨래판 사건’을 꼽았다. 데이빗 킴 공동 수석 프로듀서는 “1920년대를 찍고 있는데, 그 시절에 없던 빨래판을 소품으로 내놓아 당황했던 적이 있다”며 “아무래도 미국 스태프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이동훈 피디님과 함께 현장에 매일 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극 중 사용되는 언어가 한국어, 일어, 영어에 부산과 제주, 오사카 사투리까지 나오다 보니 통역 등 언어와 관련된 일을 하는 스태프만 30여 명이 됐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두 수석 프로듀서는 “고증을 확실히 하고 싶었고, 촬영 모니터링도 했는데 이게 오사카 사투리인지 아닌지를 알 수 가 없었다”며 “현장의 컨설팅 코치를 믿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불확실성에 대한 부분이 있었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파친코'에서 선자 아버지 역을 맡은 이대호 배우는 딸의 물질을 보면서 함께 숨을 참는 장면을 촬영하던 중 대본과 달리 바다에까지 들어가는 바람에 해파리에 쏘이는 후유증을 겪었다. 구순열 분장 탓에 음식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애플TV플러스 화면 캡처
이대호 배우는 어린 선자의 연기를 돕기 위해 함께 바다에 들어갔다가 해파리에게 쏘인 일을 들려줬다. 그는 “영도 바닷가 신을 찍던 날 촬영이 지체돼 물을 좋아하던 아역조차도 견디기 힘들어한 적이 있었다”며 “극 중에서 다리가 불편한 선자 아버지가 바다에 들어가면 죽을 수도 있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들어가다 보니 목 밑까지 물이 차서 안전요원이 출동했다”고 전했다. 이어 “감정에 취해 몸이 파도를 따라 흘러갈 정도가 됐고, 나중에 옷을 벗어보니 해파리에 엄청 쏘였더라”며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제가 선택한 거라 프로페셔널 한 척, 안 아픈 척 하고 뒤돌아서 약 바르고 맥주 마시며 위로를 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선자가 슬픔 속에 바닷가를 찾는 장면은 부산 영도구 태종대 자갈마당에서 촬영됐다. 애플TV+ 화면 캡처
부산 경성대 연극영화과 출신이라는 이대호 배우는 “대학교 때 교수님께서 출석을 부르다 내 이름이 나오면 학생들이 롯데 응원가를 부를 정도로 야구 선수 이대호의 인기가 높았다”며 “나도 배우가 되려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야구 선수 이대호보다 유명해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그는 “선자 아버지 ‘훈’이라는 캐릭터를 유명한 배우들도 많이 오디션을 봤다고 들었다”며 “저에게 기회가 온 것처럼 한국 안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전 세계적으로는 일어날 수 있으니, 다른 배우들도 더 버티고 함께 꿈을 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애플TV플러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 애플TV+ 제공
캐스팅과 관련해서는 ‘단순히 유명한 배우가 아닌, 선자를 연기할 배우를 한국에서 찾을 수 있을까’에서 작업이 시작됐다는 뒷이야기도 나왔다. 데이빗 킴 공동 수석 프로듀서는 “화상으로 수 휴 작가와 미팅을 했을 때 그 시대에 맞는 배우가 없다면 안 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며 “캐스팅을 하루 전에 끝낸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아무래도 미국이 여러 플랫폼을 주도적으로 끌어가고 있는데, 추구하는 콘텐츠가 다 다르다”며 “여러분들이 준비하는 게 당장은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못 받더라도 세상에 들려주고 싶다는 이야기가 있다면 길이 분명히 열릴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할까 고민하다 보면 한국에서 안 하는 게 뭘까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며 “우리가 이미 너무 많이 다룬 주제나 너무 소수의 이야기다 싶은 주제도 세계 시장에서는 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